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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1/31 15:37:26 |
Name |
비오는수요일 |
Subject |
어느날 저녁의 일상(日常) |
my message 37
'아빠! 힘내세요오~ 우리가아~ 있자나요~'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면 들려오는 소리입니다.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갈 우리 딸과, 이제 간단한 의사표현 - 사실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들만 - 을 하게된 아들녀석의 노래.
경쾌한 공주님의 목소리와 혀짧은, 새는 발음인 왕자의 아빠를 위한 노래에 흐믓해지는것은 잠시뿐.
곧이어 들려오는 첫째의 수다와 둘째의 박치기에 아빠는 절규합니다.
'옷도 안갈아입었다구~ 노래나 부르지 말던가.....ㅡㅜ'
늦은 저녁후 소일거리를 찾아보다, 늘어지게 자고있는 울집 강아지 율무를 흔들어 깨우는 저에게 아내가 한소리 합니다.
'어휴, 좀 자게 놔둬. 낮에는 애들한테 시달리고, 밤에는 아빠한테 시달리네.'
건들지 못하게 되니 더욱 장난치고 싶어졌습니다.
자는 녀석의 코앞에서 입김을 솔솔 날리자, 양치하기 전의 음식냄새에 녀석은 코를 벌름거려지고 입맛을 다십니다.
강도를 높여서 귀에다 바람을 후하고 부니, 녀석의 귀가 팔랑거리다가 이윽고 고개를 파닥이며 귀찮아 합니다.
음침한 웃음을 지으며 최후의 한방을 날리려는 순간, 뒷목이 서늘해지는 느낌에 누운자세 그대로 팽그르르 몸을 방 저편으로 굴리며,
어이없어하는 아내의 코웃음소리를 흘려보냅니다.
배를 두드리며 누워있자, 마우스로 공주들의 옷을 이리저리 갈아 입히던 첫째가 묻습니다.
'아빠, 나 이거 더 해도 돼?'
'응'
'아빠, 그럼 오늘도 그거 안볼거야?'
'뭘?'
'응, 응, 그거 있잖아, 벌레가 막 떠다니고 게처럼 옆으로 다니는 로보트 나오는 게임.'
순간,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들... 스타크래프트....
'응, 안볼거니까 하던거 마저해. 그대신 9시까지만하고 양치하고 자는거다?'
책을 펼쳐드는 나에게 아내가 묻습니다.
'요즘 왜 하지도, 보지도 않아?'
'그냥...'
'괜찮아. 눈치 안줄게 봐'
'응. 나중에 볼게...'
요사이 바쁘게 지낸 남편이 애처로웠는지 아내는 제법 큰 인심을 씁니다.
그날밤, 컴퓨터를 켜고 VOD를 보기위해 온게임넷과 엠비씨게임을 살펴보던 저는 말 그대로 OTL 모드였습니다.
어찌나 안본게 많던지....
그간 바쁘기도 하고, 제가 응원하던 선수들의 부진으로 잠시 스타를 멀리하기 했지만,
이리도 많이 밀려있을 줄이야....
'안자? 내일 늦을려고...'
자는줄 알았던 아내가 시계를 보더니 한마디 던집니다.
'응, 이것만 보고...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벌써?'
'내일봐.'
'응'
오랫만의 스타리그 시청은 잠시 잊고 지냈던 것보다 더 많은 갈증을 남긴채 잠자리로 들게 했습니다.
*다들 잘 지내셨는지요.
항상 행복하시고, 곧 다가올 구정인사를 미리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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