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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1/22 10:00:50 |
Name |
jerrys |
Subject |
페르시아 왕자와 의천도룡기 |
< 페르시아 왕자와 의천도룡기 >
온게임넷을 시청하다 보니 새로 나온 페르시아 왕자의 게임 화면이 보인다.
"페르시아 왕자" 하면 1990년의 그 무더웠던 여름이 떠오른다.
360K 플로피 디스크가 두 개 있는 XT 컴퓨터에 갈아 끼우며 열심히 즐겼던 그 페르시아 왕자다.
실로 그 시대에 있어 페르시아 왕자는 게임의 개념을 바꾼 기념비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PC게임도 이렇게 완성도가 있을 수 있다는 충격과 동시에 PC게임에 대한 관심과 가능성을
증폭시킨, 한마디로 대작, 중의 대작이다. 시대적인 충격을 말한다면 스타크래프트와 비견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새로운 페르시아 왕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요상한 무공을 선보이며 적들과
싸우는데, 귀엽게 앞뒤로 움직이며 칼싸움하던 1편의 왕자와는 사뭇 다르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페르시아에도 저런 동양적인 무공이 있었을까?
페르시아는 지금의 이란이다.
견문이 짧아서 이란에 어떤 무술이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소설 속에는 이란에서 파생한 최대, 최강의 무공이 하나
존재하긴 했다. 바로... 건곤대나이심법!
그렇다. 의천도룡기의 명교 교주 장무기의 2대 무공 중의 하나이다.(구양신공과 더불어)
바로 이 무공으로 그는 명교 교주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김용이 말하는 파사국에서 온 무공.
그리고 파사국에서 파생된 종교가 명교이다.
명나라에서 "명"이라는 글자.
바로 명교와 관계가 깊으며 주원장은 명교의 세력을 바탕으로 제위에 오르지만 명교를 토사구팽해 버린다.
그리하여 명교는 나중에 무협지에 그토록 등장하는 "마교"의 근원이 되어 버린다.
김용이 창조해 낸 이 명교와 건곤대나이심법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마법의 책"을 보면 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부턴 실제 역사적 사실)
과거 페르시아엔 고위관료 출신으로서 축출당한 한 거물이 있었다.
-김용은 이 거물을 "산중노인"이라 부른다.
그는 첩첩산중에 들어가 자신만의 아방궁을 만든다.
깎아지른 듯한 산의 절벽에 요새를 만들어 놓아 아주 작은 자신만의 제국을 만든 것이다.
그 제국엔 도시에서 잡아온 미녀들과 그가 축적한 재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는 도시의 건장한 청년들에게 마약을 먹이고 요새로 데려온다.
요새에서 깨어난 청년들은 산해진미와 미녀들에게 매혹된다.
산중노인은 청년들에게 그들이 죽었고 여기가 천국이라는 얘기를 한다.
자신에게 충성하면 지속적으로 이 달콤한 향락을 제공하는 천국에서 살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청년들은 자객으로 키워져 다시 도시로 보내진다.
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청년들은 산중노인에게 목숨을 바쳐 충성한다.
그렇다. 이 작은 요새는 주변국가들의 위협하는 자객의 양성소였고 모든 무협지에 등장하는
자객단. 자객요새의 발원지이다. 주변국가 고위관료들의 청탁을 받아 산중노인은 자객들에게
상대국가의 제왕과 관료를 암살하라 지시한다. 한마디로 산중노인의 요새는 주변국가들에게
있어 크나큰 근심거리였다. 그러나.. 이 요새의 방어는 완벽하여 여러 차례에 걸친
주변국가들의 원정과 토벌 노력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김용의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요새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존재하는 요새들은 바로 이 역사적
컨텐츠에서 동기를 얻은 것은 아닐까. 비호외전의 설산요새나 동방불패의 흑목애 등)
그러나 끝이 없는 잔치란 없다고 했다.
놀랍게도 산중노인의 요새가 전멸하게 된 방법은 지극히 평범하다.
산중노인이 만난 큰 강적은 지상 최대의 제국 원나라였다.
몽골의 군대는 서역 원정을 위해 페르시아를 지나갔고 악명높은 산중노인의 요새를 지나치게
되었다. 최강의 군대 역시도 이 완벽한 요새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함락시킬 수 없다는 걸 간파한 몽골의 군대는 지극히 핵심적인 요점만을 찔렀다.
몽골군대는 요새 앞에 진을 치고 3개월을 기다렸다.
결국, 원제국의 군대는 요새의 사람들을 모두 굶어 죽여서 함락을 시킨다.
(다시 소설로 돌아와서)
명교의 초대 교주는 이 산중노인 휘하의 장수 중의 하나였다.
뛰어난 무공을 가진 그는 요새가 함락된 이후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신공을 터득한다.
그리하여 명교가 탄생되고 그의 건곤대나이 무공이 교주의 신표로 자리매김 되었다.
이 매혹적인 컨텐츠를 당대의 대가, 백과전서파적인 지식을 지닌 김용이 지나칠 리 없다.
소설보다도 더 소설적인 이야기를, 소설 속에 녹여내어 명작을 탄생시켰다.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매혹적인 자객단 이야기가 없을까.
역사적인 사실은 아니지만 놀랍게도 있긴 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것을 쓴 작가가 미국인이라는 것.
"디스트로이어"라는 B급 액션 소설이 그것이다.
주인공 "리모"의 스승은 한국인이다. 스승은 한국의 "신안주"라는 마을 출신이고 신안주는
대대로 가장 뛰어난 자객을 양성하는 마을이었다.(실제로 북한에 존재하는 도시이다.)
신안주의 자객들은 주변국가의 왕과 제후들에게 봉사를 하여 자기 마을을 먹여 살린다.
즉, 산중노인의 요새와 같이 신안주의 자객들은 주변국가의 요인들을 암살하는 일을 했다.
큰 차이라면 산중노인의 자신의 영달을 위해 능력을 쓴 반면, 신안주의 자객들에겐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마을을 먹여 살리는 나름의 대의가 있다는 것이다.
총을 가진 상대방을 눈을 틈을 타서 날려버리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리모의 스승은
자랑스럽게도 한국이다.(^^) 작가가 대체 어디서 이런 이야기의 소재를 취득했는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신안주에 자객단이 있었다는 근거는 찾기 힘들다.
salt night 같은 발상은 참으로 신선하다.
쏠트나잇은 일정수준의 무공수위에 오른 자객이 겪는 신체의 변화인데 입안에서 짠맛이
계속 나와 지속적으로 침을 뱉어야 하는.. 묘한 현상이다. 이 현상을 겪은 자객은 어린아이가
성인이 되듯 비로소 자객의 이름으로 불릴 만큼 성장했다는 증명을 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디스트로이어는 B급 소설에 B급 영화로서 그 생명을 다하고 말았다.
게임이나 영화의 컨텐츠는 단지 상상력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뛰어난 상상력은 과거의 무수한 텍스트를 자기의 것으로 녹였을 때 나오는 것일 게다.
매일 무수하게 속출되는 게임을 보며, 내용이 새롭고 새롭고 또 새롭다는 홍보를 보며
아쉬움을 느낄 때면 옛날 일이 떠오른다.
99년인가...
창의적인 컨텐츠라고 자부하며 용산의 한 게임제작업체를 찾아가서 내 기획을 설명했을 때
한 기획자가 했던 얘기. 판타지가 게임에 지속적으로 채용되는 것은, 그리고 그 내용들이
질릴 정도로 무수하게 반복되는 것은, 그것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게임을 즐기는
세대들이 그러한 문화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라고.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해마다 새로 나오는 게임들을 바라보며, 그 기획자의 말이 사실이 아니길 기대하고 또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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