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憑依) : 귀신들림 1편 보기
빙의(憑依) : 귀신들림 2편 보기
빙의(憑依) : 귀신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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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시작되었다.
맵은 Nostomania. 2000년대 중반쯤 사용되어 뛰어난 밸런스를 자랑한 끝에, 국민맵이라고까지 불렸던 Lost
Temple을 뒤엎고 새로운 국민맵으로 자리매김했던 Nostalgia맵의 2009년판 수정본. 현재 배틀넷 최고의 인기
몰이를 하고 있는 맵이다.
재호의 위치는 11시. 재호는 오버로드를 세로 방향으로 보내며, 생각해둔 빌드를 점검한다. 재호가 생각하고 있는
전략은 빠른 원해처리 저글링 러커. 최근 저그의 경향이나 평소 재호의 성향과는 상당히 다른 전략이었다.
'지석이는 분명 내가 앞마당을 가져갈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역을 찌른다.'
재호는 9드론 --> 오버로드 --> 익스트렉터 --> 드론 --> 오버로드 생산후 스포닝으로 진행한다. 재호의 빌드는
테란의 첫번째 진출병력(마린1부대에 메딕2기, 파이어벳 1기 정도) 타이밍에 4기의 러커와 10기의 저글링을 확보
하는 빌드다. 이 타이밍을 넘기고 테란의 병력이 더 모이면 암울해지지만 이 한 타이밍이 강력하여 이 타이밍의 병
력으로 테란을 밀어버릴 수 있는 전략이다.
재호의 스포닝풀이 3/2쯤 지어졌을 때 지석의 SCV가 재호의 본진으로 올라온다.
- Nietzsche1900 : ???
- Nietzsche1900 : Lurker Fast?
- DrunkenTiger : ?
'이 녀석... 이 빌드를 알까...?'
사실 이와같은 원해처리 저글링 러커 빌드는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테란의 컨트롤이 일정수준 이상일 경우
센터에서 마린/메딕 병력으로 농성하면서 시간을 끌고, 본진 입구를 벙커+터렛으로 수비한 후 탱크만 확보하면 원
해처리로 출발한 저그가 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쓰이지 않기 때문에 더 위력적이다라는 것이 재호의 생각이었다. 지석은 분명 저그의 이와 같은 운영에
익숙지 못할 것이고, 당황하는사이 병력만 갖춰지면 그것으로 게임은 끝이다. 그리고 재호가 보는 견지에서 지석의
바이오닉 컨트롤은 그다지 좋은 편이 못된다.
재호는 스포닝풀이 완성되자마자 레어업을 한다. 레어가 올라간 후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가스 100이 모이자 곧바로
저글링 발업을 누르고 저글링을 4기 생산한다. 그리고 히드라덴을 지은 후 다시 저글링 4기 생산. 이 타이밍에 저그의
인구수는 16/17. 레어가 완성되면 바로 러커업을 한 후 1히드라 --> 오버로드 --> 3히드라 --> 4기 히드라 러커변태
로 진행한다.
이 빌드가 가장 위험한 타이밍은 히드라를 생산하며 러커업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타이밍. 이 타이밍에 센스있는
테란이라면 2~3기의 SCV와 8기 가량의 마린으로 찌르기를 하기 마련이다. 이 때 저그는 8기의 발업 저글링을
보유하게 되는데, 이 저글링으로 테란의 마린을 거의 잡아내야 한다. 컨트롤 싸움에 승리하여 마린을 최대 1~2
기 제외하고 다 잡아내면 곧바로 러커를 보유하게되는 저그가 절대적으로 유리해지지만, 4기 이상의 마린이 남고
저글링을 모두 잃는다면 러커 보유전에 무방비 상태인 본진으로 마린과 SCV가 난입하게 되고 경기는 어려워진다.
재호는 자신이 있었다. 비슷한 수준의 컨트롤 수준이고, 소수대 소수일 경우 발업저글링과 생마린은 1:1 승부가
가능하다. 물론 SCV의 전투시 역할이 변수가 되겠지만 지석의 컨트롤 수준을 고려할 때 충분히 잡아먹을 수 있다.
'아니... 지석이의 스타일이라면 아예 그 타이밍의 찌르기가 없을지도 모르지...'
재호의 생각은 틀렸다.
지석의 진영 근처를 배회하던 재호의 오버로드에 중앙으로 진출하는 지석의 병력이 발견되었다. 칼날같은 타이밍.
마치 이 빌드를 알고 있는 사람같은 타이밍이다.
'알고 있다고 해도.... 컨트롤이 안된다면 말짱 꽝이지.'
재호는 8기의 발업저글링은을 지석의 경로에 매복시키며 오버로드 1기를 띄워놓는다. 어택으로 이동할 경우 마린은
공중의 오버로드를 공격하고 SCV는 지나치게 된다. 마린과 SCV가 분리된 이 짧은 타이밍에 마린을 덮쳐 잡아버린
다는 것이 지석의 계산이었다.
재호의 예상대로 지석의 마린들은 오버로드를 공격하느라 SCV와 떨어진다. 바로 그 순간, 중앙의 구조물 뒤에
숨어있던 재호의 저글링들이 지석의 마린을 덮친다.
'좋다... 이 경기는 잡았다...'
'어...?'
재호의 예측을 벗어난 상황은 바로 그 때 벌어진다.
재호의 저글링이 지석의 마린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찰나적으로 지석의 마린들은 오버로드 사격을 멈추고 달려오는
저글링쪽에서 가장 가까운 마린 한 기만을 남긴채 구조물을 끼고 돌아가버린다. 그리고 어택 명령을 받은 저글링이
남아있는 마린 한 기를 때리는 짧은 순간에 지나쳐갔던 SCV가 마린진영에 합류한다. 재호의 저글링들은 뒤늦게
마린들을 쫓아가지만 SCV에 길이 막혀 우왕좌왕하다가 마린들의 가우스건에 상당한 피해를 입었고, 결국 최초
미끼가 되었던 마린을 포함해서 단 3기의 마린을 잡은채 모두 전사하고만다.
'말도 안돼.... 이게 지석이라구?'
재호가 헛된 생각을 하는 틈에 지석의 마린 5기와 SCV 3기는 재호의 진영으로 돌입한다. 재호의 진영에는 공격병력
이라곤 막 생산된 히드라 4기 뿐. 아직 러커 업그레이드조차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지석의 병력을 맞이한 재호는 부랴
부랴 성큰 1기를 건설하며 저글링을 찍어낸다.
지석의 마린들은 미네랄 필드 뒤쪽으로 들어가 일점사로 재호의 드론 1기를 잡아내며, SCV로는 벙커를 짓는다.
그러나 재호의 성큰이 건설되는 위치를 보고는 벙커를 취소하고 도망가는 드론을 쫓하가며 무빙샷으로 1기의 드론을
더 잡아낸다.
재호의 빌드는 최적화된 숫자의 드론만을 운영하는 빌드이다. 따라서 이 타이밍에 2기의 드론이 잡힌 것만해도 상당한
타격이며, 더구나 드론이 도망다니느라 일을 못한 것까지 감안한다면 거의 암담한 수준의 타격. 그래도 재호가 GG를
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잠시후면 러커를 보유하게 된다는 기대 때문이다.
'지석이도 컨트롤을 하느라 본진에서 별다른 병력을 생산하지는 못했을거야. 그렇다면 러커 4기가 보유되는 타이밍에
추가 생산한 저글링과 함께 공격할 수 있는 한 타이밍이 나온다. 승리를 향한 한 타이밍이!'
재호의 히드라가 러커로 변태하고, 저글링이 생산되는 타이밍에 맞춰 지석의 병력은 본진으로 회군한다. 재호는 할거
다하고 살아서 돌아가는 지석의 마린들이 미웠지만 이 타이밍에 어설프게 저글링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추격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에 저글링 8기 + 러커 4기가 갖춰진 시점에 재호는 지석의 본진으로 달려간다.
'입구에 벙커가 있겠지? 한 방에 뚫을 수밖에...'
재호는 입구벙커를 예상하며 언덕을 오르지만,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
'응? 벙커가 없어?'
재호가 의아함을 느끼는 그 순간, 언덕 아래쪽과 위쪽에서 동시에 지석의 1부대 규모를 훨씬 넘어서는 바이오닉
병력이 덮쳐온다. 재호는 놀라 버로우키를 누르지만 좁은 언덕입구에 겹쳐진 러커는 버벅거리게 되고 순식간에 러커
1기가 마린의 일점사에, 그리고 저글링은 파이어벳에 의해 터져나간다.
지석은 러커가 막 버로우하는 순간까지 일점사를 멈추지 않고 스캔을 뿌려 한 기의 러커를 더 잡았고, 그 댓가로 단
두기의 파이어뱃만 잃고 러커의 사거리 밖으로 이동한다. 재호는 망연자실, 잠시 자신이 게임중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모니터를 뚫어져라 응시한다.
'이게 지석이라구...?'
이 게임에서 지석이 보여준 컨트롤은 확실히 평소의 지석과는 다르다. 컨트롤 뿐이 아니다. 생마린 찌르기를 나온
타이밍, 저글링이 마린을 덮칠때 보여준 반응속도, 마린병력을 컨트롤하면서도 본진에서 테크를 올리고 병력을 생산한
생산력과 멀티테스킹 능력, 그리고 경기내내 보여준 운영능력. 모든 면에서 지석은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재호는 자신이 상대하는 것이 오지석이 아니라 어느 프로게이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석의 플레이에 기가
질려 있었다.
바둑으로 치자면 돌 던질 곳을 찾는 심정으로, 재호는 본진에서 추가 생산된 저글링과 러커를 지석의 진영으로 보낸다.
그러나 지석은 자신의 입구에서 재호의 병력을 쌈싸먹기한 병력 중 외부에 있던 병력을 보내 센터에서 재호의 병력과
숨바꼭질을 하며 병력 충원을 늦춤과 동시에, 본진 안쪽의 병력을 동원 한 번의 스캔으로 입구의 러커 2기를 마저
잡아낸다. 마치 프로게이머를 보듯 깔끔한 마린 산개 컨트롤. 뒤이어 숨바꼭질하던 병력과 본진의 병력이 합류하여
재호의 추가 병력까지 잡아내자 재호는 입맛을 다시며 미련없이 GG를 선언한다.
- DrunkenTiger : GG
- Nietzsche1900 : GG
"후우...."
게임을 빠져나와 길게 한숨을 쉰 재호는 일어나 지석에게 다가간다.
"야, 오지석! 너 미쳤냐? 오늘 이 자식 완전히 신들렸네..."
지석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대신 땀에 흠뻑 젖은 얼굴로 마우스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있다.
"얌마, 왜 그래?"
넋이 나간 듯 앉아 있던 지석을 그제서야 정신이 든 듯 고개를 들어 재호를 바라본다.
"하아...하아..."
"아... 아무것도 아니야."
땀을 흘리는 것으로 모자라 마치 농구라도 한 게임 한 것처럼 숨까지 헐떡이는 지석을 보며 재호는 의아한듯 말을
잇는다.
"뭐야? 너 어디 아프냐? 왜 이리 숨을 몰아쉬고 그래? 승리에 취해서 흥분한거야? 그런거야?"
"아니... 아마 너무 집중해서 게임을 해서 그런가봐."
"휴~ 그래. 그러니까 니가 그런 실력 이상의 플레이를 보이지..."
잠시 말을 끊고 있던 재호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지석을 보며 다시 말을 꺼낸다.
"야, 이제 게임은 그만하고 나가서 뭐 좀 먹자. 배고프다."
"아냐, 나 그냥 먼저갈께."
"응? 왜 벌써?"
"어.. 몸이 좀 안좋은거 같아. 먼저 들어갈께. 미안... 내일봐."
"야! 뭐가 그렇게 급해? 임마! 오지석!"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듯 황급히 말을 이은 지석을 재호의 부름조차 뒤로한채 서둘러 그곳을 떠난다. 재호는 의아함을
느꼈지만 더이상 지석을 잡지는 않았다. 어쩐지 그래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재호는 오늘따라 지석의 걸음걸이가 어정쩡하다는 생각을 한다. 평소의 지석과는 왠지 달라
보이는걸? 게임에 패배한 지석이와 승리한 지석이의 차이일까? 실없는 생각을 하며 재호는 뒤로 돌아서서 지석이 앉아
있던 자리를 바라본다. 키보드를 적신 지석의 땀이 햇빛에 반사되며 희미한 무지개를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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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너무 오랫만이 올리는지라 이 글을 기억하시는 분이나 있을지 걱정입니다...;;;
제가 한 두 편이나마 esports를 소재로 글을 쓰면서 늘 고민되는 것이 바로 게임장면의 묘사입니다. esports 소설이라면 당연히 게임장면이 실감나야 한다는 것이 저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만... 이것이 시간도, 분량도 너무 많이 잡아먹거든요... 특히 사실감을 살리려면 타이밍이나 맵에 대해 연구도 해야하고 실험도 해보게 되는데...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저의 스타실력도 참 고민입니다.
그저 최선을 다할 밖에요...
좋은 하루 되시고....
제 글을 읽고,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께 행운이 깃들기를~~★
p.s : 위 경기에서 재호가 쓴 빌드는 pgr전략게시판에 '김대선'님께서 올려주신 빌드입니다. 제가 배틀넷에서 상당한 재미를 보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