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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1/11 12:21:21
Name IntiFadA
Subject 인터넷에서 주장하기...(부제 : 인소불욕 물시어인(人所不欲勿施於人))
                                                                        1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논어(論語)》〈위령공편(衛靈公篇)>에 나오는 말로 해석하자면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
정도가 되겠지요. 쉽게 말해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도 하기 싫은 법이니 남에게도 시키거나 강요하지 말라는 뜻이
되겠네요.

언젠가 동양철학을 조금 공부하다가 위의 말에 대해 반박하는 주장을 본 일이 있습니다. 대략 아래와 같은 논리가
되겠네요.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말은 '내가 하기 싫은 일'='남이 하기 싫은 일'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어찌 사람이 원하고, 원치 않는 바가 같겠는가? 진정으로 남에게 하게하지 말아야 할 일은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가 아니고 '남이 하고자 하지 않는 바'이다.

결국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 아니라 인소불욕 물시어인(人所不欲勿施於人 : 남이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출지 말라)이 맞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죠.

처음엔 그저 말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곱씹을수록 깊이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소불욕' = '인소불욕' 이라는 공자의 등식은 어쩌면 '나'='남'이라는 측면에서 대단히 독선적이고 폭력적인
구석이 있는지 모릅니다. 예를들어 저와같은 이성애자가 동성애자에게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동성애를 그 또한
하지 않을 것을 강요한다면 그건 폭력입니다. 내가 배가 고프다고 해서 배부른 사람까지 억지로 밥을 먹여서는
안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어찌 저와 같은 하찮은 사람이 공자같은 대철학자의 이야기에 감히 반박을 하겠습니까만은 비단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의 경우 뿐 아니라 전통적 유교에서 이와 같은 구석은 의외로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편입니다.

이 글에서 길게 논의할 바는 못되지만 - 게다가 잘 알지도 못합니다...OTL -  고자와 맹자 사이에 벌어졌던
인성론 논쟁과 결국 유교의 법통은 인성(人性)  동질성, 내지는 일관성을 주장한 맹자에게 이어졌다는 것 또한
위와 같은 유교적 오류(물론 어디까지나 현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를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인간의 성(性 - SEX라고 생각하신다면 낭패-_-;;)은 일정한 방향과 동일성을 가지며, 여기에
어긋나는 것은 본성(本性)에서 벗어난 그른 것이다라는 정도의 이야기가 되겠네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 논의인지는 짐작이 가능하시겠지요...



                                                                         2


저 자신의 이해 수준 자체가 높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고리타분하게 여겨질 수 있는 유교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요즘 인터넷에서 자신의 기준에 남을 억지로 맞추려 하는 시도를 너무나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저 자신도 그렇기를 바라구요. 이것도 옳다, 저것도 옳다
하는 사람보다는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훨씬 솔직하고 당당해 보이지요. 더구나 실천
이라는 차원에 있어서는 명확한 당파성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몇 배 더 앞서있다는 것이 제 생각
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명확한 주관을 갖고, 이를 실천하며, 자신과 다른 - 때문에 자신의 관점에서 볼 때는 잘못된 -
생각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려는 것과 자신의 생각만이 옳기 때문에 모두 자신을 따라야 한다는 것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름에 대한 관용'이라는 차원에서 그렇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주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다른 생각을 '틀렸다'고 여긴다고 해도 스스로의 오류 가능성이 2%
는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이고 무오류의 신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논쟁할지언정 비난해서는 안되는 것이고, 비판할지언정 공격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지난 역사동안 벌어졌던 수많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공격이 종교적, 정치적, 철학적 신념의 차이에 있어서
자기 주장이 강한 것과 자기 주장을 강요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만약 모든 이들이 "나는 당신을 반대한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당신이 말할 권리를 방어하겠다."라는 볼테르의
말을 한 번쯤 되새긴다면 세상은 훨씬더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자신의 의견과 어지간히 다른 정도라면 그저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이라고 치부하십시오. 그보다 조금 더
심각한 의견차이라면 "OOO님의 말씀도 일리는 있습니다만..."리하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반박해 보십시오.
이 의견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이는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심각한 오류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좀 더 본격적으로 토론할 필요가 있겠지만 마지막까지 이것 하나만 생각하십시오. "내가 틀릴 가능성도 최소한
2%는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한 줄짜리 비꼬는 말로 비판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은 굉장히 세련된 풍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남에게는 정성껏 올린 의견에 대한 비웃음으로 받아들여질 뿐입니다. 다른 의견을 표현할
수록, 그 다름의 정도가 크면 클수록 말과 글은 상세해지고 길어지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3


어찌저찌 떠들어대다보니 말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제 별명이 '절대수다'라죠...;;;)

그저 요즘 이런저런 사이트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보며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라는 말에 대한
비판을 본 기억이 나서 끄적거려봤습니다.

어설플 동양사상에 대한 지식으로 글을 쓴 점, 제대로 알고계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아마 유교에 대한 저의 위의
비판에는 상당한 오류의 여지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혹시 틀린 점을 바로잡아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진심으로
감사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주로 하고자 한 이야기는 두번째 문단의 내용이니 첫 문단의 내용이 맘에 들지 않으시더라도 넓은
아량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두번째 문단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반론, 비판 모두 환영입
니다.

쓸대없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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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미
05/01/11 12:27
수정 아이콘
흠, '나와 남은 같다'가 아니라 '나와 남은 다르다. 그러나 인정한다'인가요. 역시 어렵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세우는 것도 어렵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제대로 존중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지금 이 댓글을 다는 것조차 갑자기 무척 어렵게 느껴집니다. 뭐라고 써야 할지 점점 난감해지는 가운데 이 말로 마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총알이 모자라.
05/01/11 12:31
수정 아이콘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을 거꾸로 생각하면 남도 원하지 않는데 나도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강제로 시키려 들지 마라 라고 생각해도 될 듯하기도 하고 아니기도하고..--;;
전 좋은게 좋은거다 하고 사는 편입니다. 물론 싸울때는 열을 내고 손해보는 것을 즐기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타협이 가능하거나 - 타협의 이득이 더 큰경우죠 --;; - 단순한 제 감정의 문제라면 그냥 숨한번 크게 쉬고 맙니다. 제 감정을 채우기 위해 제 자신을 몰아 부치기는 싫으니까요.
휘발유
05/01/11 12:42
수정 아이콘
생각이 복잡해 지는군요
저런 식으로 생각하면 절대 '선' 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건가요??
각자 내가 하고 싶은일이 있으며 상대방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누구의 말도 맞다는 얘기가 되는거 아닌가요?
악플러이든 선플러이든
The Drizzle
05/01/11 12:47
수정 아이콘
이미 내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억지로 이해시키기 위해 애쓰게 되니까 논쟁이 발생하게 되는것이겠지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PGR에서의 논쟁의 주요 문제점은 단순히 '자기주장이 강하'다고 생기는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물론 그 근간이 되는 것은 '강한 자기주장'이 될 수 있겠지만 PGR에서의 논쟁의 주 쟁점은 그 표현방법에 관한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소위 '악플'이라고 불리는 댓글들, 그리고 의미없는 소모적인 논쟁들을 살펴보다보면 그릇된 표현들이 많인 녹아 있음을 보게 됩니다. 내용상으로 타당한 말들이지만 '악의적인 반감'이 녹아있는 표현들이 사용됨으로 (물론 욕은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욕보다 기분나쁜것들은 많죠.) 단어 하나를 걸고, 문장 하나를 걸고 소모적인 논쟁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쉬운일은 아닐 것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할 수도 없는 노릇이며, 상대방이 원하는 표현만을 고른다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뜻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길이 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전 저를 포함한 모든 PGR성원들이 write 버튼을 최종적으로 누르기 전, 자신이 사용한 표현들을 되돌아 보면서 '이 뜻을 전달하기 위해 좀더 순화된 표현이 없을까?' 하는 자문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글을 쓸때는 IntiFadA님과 같이 '반론, 비판 모두 환영입니다.' 라고 생각할 줄 아는 자세도 필요하겠지요.

정말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네요.
카이레스
05/01/11 13:04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 글이군요. 저는 기소불욕물시어인을 그저 좋은 말로 치부했지 그런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최근 게시판 분위기가 험악하고 한 줄짜리 비꼬는 댓글들도 꽤 있어서 게시판의 글을 읽는 것이 조금 불편했는데 간만에 좋은 글 보고 가네요. 감사합니다^^
05/01/11 13:11
수정 아이콘
...갑자기 논어를 계속 연구해보고 싶어지는 필요성이 드는 글이군요.
좋습니다. 좋은 글입니다.
안전제일
05/01/11 13:32
수정 아이콘
음....견딜수 없다-라고 생각되게 만드는 사람은 피합니다.
이리숨고 저리숨고 철저하게 내치죠.
그래도 그렇게 하는게 차라리 낫더군요. 으하하하.

대부분의 '좋다'라고 생각되는 의견은 양비론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가 쉽습니다. 공감대가 그만큼 넓어지니까요.
그것이 양비론이 아니라 합의가 되게 해야 하는게 구성원의 몫이겠지요.
05/01/12 13:04
수정 아이콘
사유가 담겨있는 한껏 짙은 향을 느낄 수 있는 글 감사합니다.
다만 아쉽다면 이 사이트에서는 이런 글은 '검색'으로 찾아야 한다는 점이네요. 웬만해서 이런 글은 추천게시판에 있지는 않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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