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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1/10 12:21:32
Name IntiFadA
Subject [연재] 빙의(憑依) : 귀신들림(2) - Memory of 2004
딱... 오늘만 2연참입니다...하루만 도배 용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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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憑依) : 귀신들림




                                                                         1



  - Nietzsche1900 : GG
  - DrunkenTiger  : GG

"후우~"

지석은 F10 + E + S + Q를 빠르게 누르고 나서 한숨을 쉰다.

또 졌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인정하는 게임매니아인 지석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StarCraft만큼은 뜻대로 게임이 되질
않는다. 이 게임을 시작한지도 몇 년이 되었는데, 아직 공방 5할 승률이 벅찰 지경이다.

"역시... 넌 안돼."

지석의 반 친구인 재호가 빙글빙글 웃으며 지석의 자리 쪽으로 다가왔다.

"앞마당에 성큰이 7개나 있는데 불꽃으로 달려들다니 제정신이냐? 어떻게 된 놈이 아직도 기본적인 상성을 몰라요..."

"마린이 성큰 깨는데 상성은 무슨 상성이야?"

"쯧쯧쯧... 유닛간의 상성이 아니라 전략간의 상성이다~ 이 말씀이지. 이 하수야!"

"시꺼... 내가 원체 RTS에는 소질 없는거 알잖아..."

"그러게... RolePlaying이나 FPS는 기차게 하는 놈이 말야...."

"스타는 이제 한물 간 게임이라고..."

"웃기지 마라. 아직도 전세계 최고 게임이다. 아니, 이젠 게임이 아니라 스포츠지...오죽하면 스포츠 뉴스에서 경기
결과를 알려주겠냐..."

둘은 티격태격해가며 게임방을 나선다.

"야, 내일은 거기 가는거다."

재호가 말을 거내자 지석은 또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답한다.

"넌 뭔 고등학생이 박물관을 그렇게 좋아하냐... 고리타분하게..."

"고리타분이라니!!"

"거기가 보통 박물관이냐? 고리타분하게? 응? 거긴 그냥 박물관이 아냐!! 무려 e스포츠 박물관이라고.... 거기엔
boxer가 쓰던 마우스와 Dayfly가 쓰던 키보드가 있다구! 그걸 어떻게 보통의 고리타분한 박물관과 비교하는
것이냐? 응? 개념은? 응? 개념은? 응? 개념은? 응? 개념은? 응? 개념은? 응? 개념은? 응? 개념은? 응? 개념은? "

"알았다, 알았어. 그만 좀 찌질대라... 알았으니 그만 집에 가고 내일 보자."

"크크크... 그래. 잘 들어가라. 내일보자~"




                                                                         2



  - Nietzsche1900   : GG
  - The3rdIntiFadA : GG

"에이 씨..."

지석은 신경질적으로 배틀넷을 나와버렸다.

또 졌다.

정찰끝에 상대가 12드론 앞마당을 가져가는 것을 확인하고 SCV 5개를 끌고 올인 치즈+벙커러쉬로 앞마당을 날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상대의 발업 저글링 역러쉬에 그냥 무너져 버렸다. 어쩐지 앞마당이 깨질 때까지 전혀 방어하려는
모습이 없어 의아하게 여겼는데 아마 일찌감치 앞마당을 포기하고 저글링을 모았었나보다.

과감히 역러쉬를 선택한 상대의 판단이나, 지석의 벙커를 무시하고 발업저글링을 바로 본진으로 달린 전술적인 움직임
이 워낙 좋긴 했어도 근본적으로는 본진 방어를 도외시한 자신의 실수였다.

벌써 스타크를 즐긴지 5년인데 지석의 실력은 좀체로 늘지를 않는다. 연습을 안한 것도 아니다. 비록 친구들 앞에서는
스타는 한물간 게임이라며 관심없는 척을 하지만 사실 지석은 누구못지 않은 스타크래프트 매니아다. 꾸준히 게임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2000년대에 벌어진 거의 모든 프로게이머간 공식전의 VOD나 리플레이를 시청했을 뿐 아니라
그 중 상당수는 소장하고 있다.

특히 2003, 4년 무렵에 활동했던 이명학이라는 테란 게이머의 스타일에 반한 지석은 그의 VOD나 리플레이라면
빠짐없이 모으고 있었다.

그런 지석이 친구들앞에서 스타가 한물갔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단 하나. 늘지않는 자신의 스타실력 탓이었다. 다른
게임과 달리 스타는 지석에게 높은 산과 같았다. 아무리 연습하고 또 연습해도 공방승률 5할을 넘기가 힘들었고,
그렇다보니 자존심 때문에라도 남들 앞에선 스타크래프트에는 관심없는 척하게된 지석이었다.

"후... 재호녀석 내일도 보나마나 한게임 하자고 할텐데..."

스타를 먼저 시작한 것은 지석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각종 게임을 섭렵했던 지석은 이미 게임의 고전이 되어버린
스타크래프트 역시 중1때부터 플레이해왔고, 친구인 재호에게 스타크래프트를 가르져주었다. 둘은 종종 함께 팀플
을 즐기곤 했는데 재호가 게임방송에 맛을 들인 이후부터 실력이 부쩍부쩍 늘었고, 마침내 지석의 실력을 앞지르게
되었다.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이겼으면 좋겠다. 이겨서 그녀석 콧대를 납짝하게 해주었으면 좋겠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재호의 실력이 앞도적이라 고등학교에 들어온 이후로 지석은 한 번도 재호를 이긴 적이
없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매번 패하면서도 경기양상 자체는 중반까지 팽팽하게 진행되는지라 재호는 늘 지석에
게 함께 게임할 것을 조르곤 했다. 겉으로는 아닌척해도 속으로는 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한 지석인지라 재호와의
게임은 고역이었다.

"이기고 싶다... 정말 이기고 싶어..."

지석의 중얼거림은 마치 누군가에게 호소라도 하는 듯 간절함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석은 한 번 더 한숨을 내쉬곤 이명학의 VOD를 켰다. 2004년 9월 프로리그에서 이명학과 김태석이
맞붙은 저그vs테란의 경기. 이미 수십번도 더 본 이 VOD를 돌리며 지석은 다시 한 번 중얼거린다.

"한 번만이라도 이기고 싶어..."

이미 밤은 깊어 새벽을 맞이하고 있었다.



                                                                         3



다음날 학교가 파하자마자 지석과 재호는 삼성동으로 향했다. 옛날 전용경기장이 설립되기 이전 스타리그가 열렸던
메가스테이션은 현재 e스포츠 박물관으로 개보수되어 있었다. 수많은 올드 게이머들의 흔적이 살아 숨쉬는 이곳은
게임을 좋아하는 많은 청소년들이 즐겨찾는 공간이기도 하다.

박물관에 들어오자마자 재호는 특유의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우와~ 여기 봐라 이거 NaDa의 싸인이 들어간 마우스다... 어? 이건 Yellow가 입던 유니폼이야... 저기, 저기
Dayfly의 키보드도 있고...."

"지석아... 나 여기서 사진찍어줘... 빨리~~"

박물관 한켠에 서있는 Boxer의 흉상앞에서 재호가 포즈를 잡으며 말을 건넨다.

"후우.... 너 거기서 사진찍는거 벌써 삼만구천팔백번째다... 응?"

"닥치고 빨리 찍어."

"네."

평소처럼 티격태격 장난치고 있는 두 사람의 옆으로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이~ 니들 또왔구나? 매일 출근부 찍듯이 오네?"

"어, 형!"

재호가 반기며 나타난 사내에게로 다가선다. 사내의 이름은 서재천. 전직 카스 프로게이머로 현재는 e스포츠 박물관
에서 일하고 있는 재호의 사촌형이다.

재호과 재천이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지석은 재천에게 대충 인사를 건내곤 두 사람을 뒤로하고 박물관
한쪽옆에 보존되어 있는 경기석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평소처럼 알 수 없는 상념에 빠져든다.

'이명학 선수가 마지막 게임을 했던 자리...'

프로게임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진정한 의미의 '천재'로 불린 선수는 둘이 있었다. 하나는 빛나는
천재 [RED]NADA 이윤열 선수. 다른 하나는 불운한 천재 KingTerran 이명학 선수. 이윤열이 천재의 광휘를
빛내며 최다우승의 신화를 써낸 최고의 선수였다면, 이명학은 일찌감치 스스로의 생을 마감해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했던 불운한 천재였다.

메가스테이션에서 벌어진 마지막 게임은 2004년 이명학과 장창곤이 맞붙은 메크로소프트배 스타리그 8강이었다. 이
게임에서 승리한 것은 이명학이었고, 패배한 것은 장창곤. 패배한 장창곤은 바로 그 자리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작을 일으키며 숨을 거두었고, 그로부터 3일 후 이명학은 자살로 생을 마무리했다.

2004년.

그 해에 프로게임계를 휩쓴 비극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경기장 내외에서 벌어진 게이머들의 잇단 죽음으로 혹시
프로게이머만 걸리는 바이러스라도 생긴 것이 아니냐는 농담 아닌 농담이 오갈 정도였다. 저그유저였던 나상호가
경기직후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을 시작으로 장학철, 변태준, 조진락, 최도건, 국준우, 서윤성, 이진철, 강상우,
그리고 장창곤과 이명학까지. 1년새 10명의 게이머가 각종 사고로 사망하여 e스포츠의 존폐가 논의될 지경이었다.

결국 장창곤과 이명학의 죽음을 끝으로 연쇄사망의 고리는 끊어졌지만 그 해 게임계는 사상 초유의 리그중단 사태를
두 번이나 겪어야 했고, 많은 e스포츠 관련자들은 이와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메가스테이션
시대를 마감, 지금의 장충동 전용경기장 시대를 열게된 것이다.

지석은 고개를 돌려 반대편 좌석을 바라보았다. 이명학의 마지막 경기의 상대이자, 역시 그 경기를 끝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던 장창곤 선수가 마지막 게임을 했던 자리. 두 사람의 젊은 게이머가 마지막 정열을 던졌던 자리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지석은 묘한 위화감을 느낀다.

"뭐하냐?"

지석의 위화감을 깬 것은 어느새 지석의 등뒤에 다가온 재호였다.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재호는 마냥 신이 난
표정으로 지석에게 말을 건다.

"으...응... 아냐, 그냥 좀..."

"짜식... 싱겁긴... 너 이 형님한테 한 턱 쏴야겠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재호가 말한다.

"뭔데?"

"그게 말이지..."

재호의 목소리가 낮아진다.

"형이 지금 사람들 없다고 저기서 한게임 해봐도 된데..."

"응? 이 무대에서?"

"그래 임마! Yellow가, Boxer가 게임했던 저 자리에서 우리가 게임을 해본다 이거야..."

"정말 그래두 돼? 여긴 박물관인데?"

"뭐 지금 사람도 없고... 관장님 안계신때는 재천이 형이 대빵이잖아... 이 몸이 로비좀 했지...흐흐흐"

괴이한 웃음을 짓는 재호를 바라보며 지석은 괜시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저 무대위에서 게임을 한다... 비운의 천재
이명학의 마지막 게임이 펼쳐졌던 저 무대에서... 지석으로서도 분명 바라마지않던 일이다. 하지만 어쩐지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 지석은 망설이고 있었다.

"오지석, 뭐해! 시간없어 빨리 앉아!"

지석이 망설이는 사이 어느새 재호는 자리를 잡고 앉아 스타크래프트를 실행시키고 있다. 재호가 앉은 자리는 이명학이
마지막 게임을 했던 자리. 지석은 여전히 꺼림칙한 기분이었지만, 더 이상 망설일 수도 없는 노릇이라 떠밀리듯 자리에
앉았다.

'내가 이명학 선수가 플레이했던 자리에 앉고 싶은데...'

'이 자리는... 장창곤 선수가 목숨을 잃었던 그 자리구나. 이 자리에 엎드린채 목숨을 잃었다고 했지...'

어쩐지 오싹하다. 지석은 몸에 한기가 도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게임에 조인한다.

  - DrunkenTiger  : GooDLucK
  - Nietzsche1900 : GG / GL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때, 장창곤 선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막 게임이 시작하려는 찰라 지석은 쓸데없는 상념에 빠져든다. 어느새 꺼림칙한 마음도, 오싹한 느낌도 사라진 듯하다.
다만 놀랍도록 차분한 상태로 지석은 게임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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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소년
05/01/10 12:29
수정 아이콘
이런류의 도배면 언제든 좋습니다 ~~
아케미
05/01/10 12:42
수정 아이콘
…괴테에 이어 이제는 니체입니까? (털썩)
파우스트에서 죽었던 선수들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보아(결국 서윤성도 죽었군요T_T), 이어지는 것 같군요. 정말로 E-sports 박물관이 나중에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워드프로세서에 정리해야 할 작품이 또 생겼네요. IntiFadA님, 앞으로도 기대 많이많이 하겠습니다^^
저그맨
05/01/10 14:17
수정 아이콘
오... 스릴러군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05/01/10 14:48
수정 아이콘
오..오...오...흥분되요 ^^
글이 올라오지 않을시에는 쪽지로 무차별 테러를 가하겠씀다 ^^ㅋ
너무 잼납니다~
(난 언제쯤 이런 글을 한번이라도...OTL털썩)
홍차소녀
05/01/10 15:08
수정 아이콘
이야; 재밌겠는데요~
05/01/10 15:59
수정 아이콘
이 글 완결까지 이 수준이 유지된다면 정말 대박감입니다. 정말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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